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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서울=뉴시스】이득수 기자 =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몇 십 년 안됐을 것 같은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천년 전인 고조선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한다. 두레 품앗이 등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회복지 개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시행하는 상평창 의창 등의 사회구제 제도가 존재했었다. 근대적인 사회복지법인은 일제 때 이 땅에 들어왔다. 식민지배 수단의 일부로 만든 것이지만 조선 구호령에 따라 일제 때 처음 생긴 고아원 양노원 등 구호시설은 첫 근대적 의미의 사회복지시설이었다.

복지재단은 거의가 일본인들이 설립해 운영해왔고, 극소수만이 한국인(조선인)이 설립한 것이었다. 한국인들은 종업원으로 종사해왔다.

그러다가 해방과 함께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해방 직후 일본인 사회복지 시설 운영자들은 모든 시설과 토지를 몽땅 놓아두고 본국으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때 일본인 밑에서 일하던 한국 사람들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큰 재산가가 되는 인생역전을 일궈냈다. 일본인 사회복지 시설들이 보유하고 있던 수십만평 수백만평이라는 막대한 규모의 부동산들이 고스란히 종업원으로 일하던 한국인 직원의 차지가 된 것이다.

복지재단의 재산은 일종의 적산가옥 같은 건데, 운영자는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주인인 사회복지재단은 그대로 있으니 압류 대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운영자가 된 한국 사람들이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재산을 사유화한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엄청난 부자가 되긴 했지만, 후에 거의가 재산문제로 집안 형제자매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다고 한다. 공짜가 없다는 말이 여기서도 진리였던 모양이다.

자광재단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회복지법인이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많은 사회복지법인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때를 1세대 사회복지시대라고 한다. 전쟁고아들을 비롯해 6.25가 남긴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고아원 양로원 입양기관 들이 이때 많이 생겨났다. 자광재단도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정구훈 자광재단 이사장은 “다른 복지법인들과 다른 것은 사회복지 전문가와 사회 지도층인사들이 설립한 명실공히 제대로 된 사회복지법인이었다”고 강조한다.

“자광재단은 서울대 사회사업학과를 창설한 하상락 교수가 주축이 돼 정신과의사 유석진, 대법원 아동청소년 담당 판사인 권순영, 감사원장 정익태 등 4인이 1955년에 설립한 서울아동상담소가 모체입니다. 하 교수님은 후에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에 사회사업 석사과정을 개설했고, 곧이어 문리대에 사회사업학과를 설립하신 우리나라 사회복지학의 태두이셨죠.”

하상락 교수는 원래 일본 중앙대 출신인데 해방직후 미 군정청 사회부에 근무했다. 군정장관인 하지 중장은 한국도 이제 한국도 현대적인 사회사업을 해야 한다며 직원 3명을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 유학을 보내 사회복지사업을 배우게 했다. 하상락을 비롯해 나중에 보건복지부 차관과 적십자사 부총재를 지낸 김항묵 박사, 홀트아동복지재단에 필적할 토종 입양기관을 설립한 백근칠 박사 등이다. 이들이 돌아와 한국 사회복지의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서울아동복지상담소는 1977년 사회복지법이 생기면서 대자애육원과 합쳐 자광재단으로 거듭난다.

하 교수는 2000년 타계할 때까지 자광재단 이사장을 맡아 이끌어 왔다. 하 교수가 별세하자 서울대 사회사업학과 동창회 지도부는 현재의 이사장인 정구훈을 새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정 이사장은 하 교수의 제자다. 김성희 전 복지부 장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조영래 변호사 김근태 대표 등 고위 관료와 유명 정치인들이 그의 대학 동기다.

“하 교수님이 위대한 것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다는 겁니다. 웬만한 재벌들은 복지재단을 만들면서 가족들이 이사를 맡고 상속했지만 하 교수는 가족에게 넘기지 않고 제자들에게 운영을 맡기셨지요.”

하 교수는 집안의 재산인 충남 금산의 임야 30만평을 자광재단에 편입시켰지만 자녀에게 이사장 자리를 주지 않았다.

정 이사장은 복지관련 단체 3곳의 사무총장을 모두 역임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회복지계의 대표적인 전문가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중앙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한국자원봉사협의회 등 3곳의 사회복지 단체를 모두 거쳐 간 사람은 정 이사장 외에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회복지단체에 오기 전에는 정치권에 몸담아 왔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회사의 보스(사장)가 전두환 집권 이후 갑작스레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얼결에 민정당 도당에서 당직을 맡아 정치에 입문했다고 한다. 도당 조직부장에 이어 중앙당에 올라가 주요 당직을 거치면서 정치 감각을 익히고 두터운 인맥을 형성했다. 정계에서 마지막으로 맡은 일이 이회창 대선후보의 특보였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빅3 단체를 섭렵한 그는 짧은 기간에 자광재단을 탄탄한 반석에 올려놓았다. 조직의 문제점이 금방 눈에 들어오니 빨리 고치고 대응할 수 있었고, 재단의 활동영역을 넓히고, 두터운 인맥을 바탕으로 재단의 사회사업을 급속도록 확장했다.

자광재단의 임원과 운영위원들 면면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만 해도 차흥봉 김성이 전 장관 2명이 있고, 현직 대학교수가 8명,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가 3명, 중견 기업체 대표가 5명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자광은 서울과 지방에 8곳에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 9호선 선정릉 역에 있는 시니어플라자는 강남구가 시설을 건설하고 자광재단이 경영하는 강남시니어플라자를 비롯해 면목종합사회복지관, 역삼노인복지센터, 강남구노인종합복지관, 금산노인전문요양원, 면목종합사회복지관, 자광 아동가정상담원, 구립중화경로복지관 등 12개 지역에서 자광재단 위탁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어려운 것도 많았습니다. 요즘이야 복지가 정치 사회적으로 누구나 입에 올리는 용어가 됐지만 10여년 전만해도 복지사업을 한다고 하면 인식이 안 좋았어요. 예전에 고아원 등에 지원되는 정부 예산을 유용하고, 일제가 두고 간 적산을 차지해 졸부가 된 사례 등이 퍼져 일을 하는데 힘든 게 많았어요. 하다못해 부랑아 노숙자 시설을 운영하는 단체들도 부정의 온상으로 비쳐졌으니까요.”

그는 외모에서 풍기는 온화하고 신사 스타일 이미지와는 달리 재단을 활성화하기 위해 곳곳을 뛰어 다니면서 안 싸워본 곳이 없을 정도로 거칠게 활동해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복지재단에서 일하는 저를 보고 재미를 많이 보는 걸로 생각하더군요. 예산 기부금 부랑아 인건비까지 3중으로 떼먹는 관행을 공무원이나 일반인들이 많이 봐 왔기 때문인데 제대로 하는 사람까지 도매금으로 부정적 시선을 받는 거죠.”

그는 복지는 돈이다라는 말을 자주 입에 올렸다.

“복지는 돈이고, 돈은 세금이며, 세금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나올 수 있는 겁니다. 모든 복지는 국가의 재정이 투입돼야 하죠. 민간에서 내는 기부금은 전체 복지 재원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담세율이 20% 남짓에 지나지 않으면서 혜택은 담세율이 50%를 넘는 북유럽 수준을 바라고 있어요. 정치인들이 무책임하게 기대치를 올려놔서 그래요.”

한정된 재원으로 급한 곳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정책 도입으로 인해 여기저기 다 나눠주느라 정작 저소득층과 위기에 처한 계층에는 혜택이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담세율을 높여야 하는데 경제 형편상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높은 효율을 올리려면 맞춤식 복지를 펴야 해요. 부적절하게 새는 돈이 없도록 철저히 감시하고 관리하면 현재의 예산으로도 얼마든지 복지혜택을 확대할 수 있어요.”

복지 재원 마련에 고심하는 박근혜 정부 관계자들이 들으면 좋아할 얘기다. 그는 또 복지행정 말단에 있는 공무원들의 자질향상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제까지 무허가 판잣집 때려 부수던 공무원이 오늘은 판잣집에 사는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복지 업무를 한다고 하니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신뢰도 없고 제대로 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는 “복지 담당자가 ‘재수 없어서 맡게 됐고,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야 할 직책’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으니 복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강조한다.

“시군구 지자체 복지담당자는 대학원에 보내 공부를 더 시켜야 합니다. 대개 공무원들이 대학원에 가면 행정학을 전공하는데 공무원 생활 20년 하면 행정학 박사인데 또 행정학을 배울 필요가 어디 있나요. 행정학 대신에 복지학 전공해야 합니다.”

또 “복지 행정공무원들이 복지정책을 세운다며 뜨내기 교수 한 두 명에게 자문을 받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교수 뿐 아니라 현장에서 경험을 갖고 있는 전문가 노인 장애인 등 100인 위원회 같은 것을 운영하면 모든 문제가 다 나온다”고 조언했다.

정 이사장은 자광재단은 향후 금산노인요양원 신축, 다문화 탈북자 관련사업, 해외 노인휴양소 교환사업 등을 펼쳐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leeds@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319호(3월2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기사링크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30318_0011928743&cID=11203&pID=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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